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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진 스리랑카에는 외화가 바닥나면서 서민들은 기름을 구하기 위해 매일 주유소에서 밤을 새우고 수도 콜롬보의 시내 도로에는 움직이는 차보다 서 있는 차들이 더 많다.
하지만 이런 고통은 일반 서민들만의 일이다.
12일 오후(현지시간) 반정부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을 점거하고 시위를 계속하고 있지만, 대통령 집무실에서 길 하나 건너에 있는 5성급 고급 호텔 앞에서는 웨딩 업체 직원들이 웨딩카를 장식하느라 한창이었다.
업체 직원은 "신부를 위해 벤츠 승용차에 꽃을 장식하고 있다"며 "신랑이 탈 차도 벤츠"라고 말했다.
휘발유는 어디에서 구했느냐는 질문에는 "부자들은 다 어디서 휘발유를 잘 구해오는 것 같다"며 "경찰이나 군에는 휘발유가 있으니 그런 데서 구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같은 시간 호텔 연회장은 결혼식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호텔 관계자는 "오늘 파티에 참석하는 손님은 350명이고 식사비만 1인당 2만 스리랑카루피(약 7만3천원)"라며 "뷔페식이어서 중간 수준 가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신랑 아버지가 정부에서 일한다고 들었다"며 "이번 주는 수요일만 빼고 저녁마다 웨딩 파티와 생일 파티 등의 예약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녁 5시 호텔 앞으로 길거리에선 볼 수 없었던 승용차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인근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호텔에서 열리는 웨딩 파티에 참석하기 위한 차들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좋은 옷을 차려입고 밴드까지 불러 파티를 즐겼다.
반면 시위대가 몰려 있는 대통령 집무실 옆 광장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는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다.
시위대 앞에서 만난 교사 삼술 히다야씨는 "일반 국민들이나 어렵고 부자들은 조금 불편한 정도일 것"이라며 "정치인과 관료들이 국민들을 속이고 돈을 훔쳐 갔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등 라자팍사 가문이 나라의 돈을 훔쳤다면서 스리랑카 경제가 어려운 것은 대통령 때문이라며 대통령 관저 벽에 "훔친 우리 돈을 돌려내라" "고타 집에 가라" 등의 문구로 분노를 표출했다.
시위에 쫓겨나 사임을 선언했던 고타바야 대통령은 13일 오전 군용기를 타고 스리랑카를 떠나 몰디브로 향한 것으로 전해졌다.